Chung Chi Yung: Tabula Rasa

1 September - 1 Octo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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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바톤은 정치영(Chung Chi Yung, b. 1972)의 개인전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9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압구정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전시제목 《타불라 라사》는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 백지상태를 뜻하는 라틴어다. 제목처럼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이며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은 기본 상태를 나타내는 백색 천이 이번 개인전에서 정치영이 주목한 대상이다. 작가가 꾸준히 주력하는 기법인 포토리얼리즘으로 재현한 천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표현 단계를 넘어서 회화적 요소를 강조한 새로운 형식의 사실주의를 탄생케 했다. 무에 가까운 색을 지닌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대상의 즉물적인 반영과 묘사를 넘어서 정서적 감정을 자극하며 천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의미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정치영의 작업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 화가 제욱시스(Zeuxis, B.C. 5세기)와 파라시오스(Parrhasios, B.C. 5세기)의 이야기를 발단으로 한다. 두 예술가 중 더욱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를 가려내기 위한 내기에서, 제욱시스가 자신의 그림을 덮은 천을 들추자 그림 속 포도 덩굴에 새가 날아와 앉았다. 이어서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에게 천을 들어 올리라고 했지만, 바로 그 천이 파라시오스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정치영은 여기서 천과 눈속임이라는 모티브를 끌어냈는데, 천의 존재와 걷어내는 행위가 두 작품의 실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듯, 정치영의 작품 속 드리워진 천자락 또한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뚜렷한 형체 없이 존재감만을 살짝 드러내는 그 너머 공간은 예상치 못한 대상의 등장 혹은 허무한 결과를 상상하게끔 하는 단서가 된다. 이렇듯 궁금증을 유발하는 상태와 그 이후를 동시에 담아낸 그의 작품은 가려진 실상을 끄집어내지도 반대로 완벽히 숨기지도 않은 미연의 상황을 암시한다.

 

정치영은 사회에서 자신의 본질을 숨길 수 있는 페르소나(persona, 가면)로도 천을 이용한다. 가면이 된 천은 세상으로부터 작가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로 역할함과 동시에, 천의 얇고 가벼운 특성은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인 그를 은유하는 주관적인 메타포로 작용한다. 천의 격자무늬와 유기형태의 주름은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흔적을 대변하듯 여러 갈래로 뻗어, 규칙성과 무규칙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올곧은 격자 주름과 역동적으로 접힌 잔줄의 교차 지점에서 사회의 객관적인 틀과 주관적인 감정이나 변수 사이의 충돌이 발생한다.

  

정치영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장치로 천을 활용하며 작품에서 자기 자신은 물론 나아가 어지러운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정적인 색채와 구겨진 접힘 묘사가 그의 사실주의적 기교 속에서도 추상성을 발휘한다. 작가가 현실감을 극대화한 포토리얼리즘과 눈속임 예술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한 회화는, 하나의 틀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구상과 추상 사이 경계 혹은 그 너머에 존재한다.

 

정치영은 국내 유수 갤러리와 기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인도 뉴델리와 홍콩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며 국제무대로 발을 넓혔다. 한국 포토리얼리즘을 이끄는 작가로서 사실주의 회화의 방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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