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ude / Subversion: Rodney Graham, David Diao, Koen van den Broek, Je Yeo Ran, Oh You Kyeong
갤러리바톤은 5인전 《전조와 전복(Prelude/Subversion)》을 10월 18일부터 11월 19일까지 압구정동 전시공간에서 개최한다.
롤랑 바르트가 그의 에세이 『저자의 죽음』(1968)에서 주창하였듯이 ‘작품의 창조’라는 개념은 사전적인 의미를 따르기보다는 조금 더 포용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한 작품의 창조에는 필연적으로 작가가 속한 사회, 예술가간의 교류, 미술사조, 개념, 기법 등 작품의 모티브 또는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 결부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전조’로 설정하고, 그것의 기본적인 속성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관점과 방식으로 차용하고 ‘전복’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창조한 작가를 한 자리에 모은다. 다양한 국적의 다섯 예술가,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 b. 1949) 데이비드 디아오(David Diao, b. 1943),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 b. 1973), 제여란(Je Yeo Ran, b. 1961), 오유경(Oh You Kyeong, b. 1979)이 참여해 모방과 창조의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캐나다 예술가 로드니 그레이엄은 소설가나 심리학자, 음악가 등을 문학, 철학, 음악적으로 참조해 유머를 가미하는 작업을 선보이곤 한다. 회화, 사진, 필름, 퍼포먼스, 음악 등 다채로운 매체와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는, 특히 추상표현주의 작가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 1912-1962)의 영향을 받은 〈Inverted Dripping〉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활달한 색채의 단순한 패턴을 무질서하게 배치한 그의 작품은 그룹 제로(Group Zero)의 기하학 추상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데이비드 디아오는 단순한 패턴과 색면을 통해 신비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그림을 선보이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다. 색면추상의 대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에게 감화된 그는 미니멀한 단색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작풍 회화를 소개하는데, 그의 화면에서 솔 르윗(Sol Le Witt, 1928-2007)과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의 무한하면서도 간결한 형태적 잔향이 느껴진다.
벨기에 출신 쿤 반 덴 브룩은 뉴욕 디아비콘(Dia:Beacon)에 있는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1927–2011)의 폐품 조각 시리즈를 보고 그린 작품을 선보인다. 체임벌린이 자동차 파편 등 폐물 산업재료를 불규칙적으로 배치해 만든 무게감 있는 조각의 불규칙한 추상 형태는 반 덴 브룩의 화면에 새롭게 담긴다. 오렌지와 그린이라는 색채가 주는 잔상은 작품에 잔잔하지만 힘 있는 에너지를 가져오며, 조각에 대응하는 회화만의 고유 성질을 드러낸다.
제여란은 호쾌한 리듬감과 묵직한 색채감이 존재하는 화면을 창조한다. 붓 대신에 물감을 밀어내는 고무롤러인 ‘스퀴지(squeegee)’를 사용하는 제여란의 작품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듯한 묵직한 덩어리와 풍부한 질감을 특징으로 한다. 작가는 형태적인 면에서는 추상표현주의의 호방한 제스처를 따르면서도, 스퀴지라는 독특한 수단으로 쌓아올린 마티에르와 대담한 기술로 오롯이 자신만의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오유경은 프랑스 금은 세공업 전문 퓌포카(Puiforcat) 공방에서 경험한 은세공 장인 정신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공방에서 연마한 기술로 은도금한 금속을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조합해 아시아 석탑에서 착안한 6개의 탑을 만든다. 산, 호수, 결정체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모형은 주변을 무한 형태로 반사하고 확산, 순환하며 빌 비올라(Bill Viola, b. 1951)의 작품에 드러난 순환성을 떠올리게도 한다.
《전조와 전복(Prelude/Subversion)》전은 개념적, 기술적, 형태적인 여러 방식으로 전조를 차용하고 전복한 결과물을 선보임으로 작가 고유의 조형언어에 대한 탐구를 이끌고 현대미술 역사에서 창조(creation)와 차용(appropriation)의 의미와 두 개념의 관계를 강조하고자 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또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재해석되고 전복될 수 있기에, 개별 작품의 전조를 제시하거나, 결과물에서 거장의 흔적을 읽어 내거나, 의외의 지점에서 과거와 연결성을 발견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