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유: 자화상

20 January - 5 Februar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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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전후 60년대 팝 아트가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서구 미술계는 바야흐로 이미지 창조에 대한 강박에서 해방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선구적인 시도 레디메이드(Readymade)가 있었지만, 당시 그것은 동시대 미술사 전반을 흔들만한 파괴력을 가지지 못했고, 훗날을 도모하는 반동 정도로 치부되었다. 일찍이 팝 아트처럼 미술이 사회의 변화와 산업 체계의 진보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그 기반과 밀접하게 연결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산업 표준이 되어버린 소위 ‘대량 생산’ 시스템은 기존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 정당화 하기 위해 민간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때마침 보급된 TV, 영화 산업의 활황, 컬러 인쇄 시대 도래는 민간 시장에 이때껏 경험해 보지 못하였던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 범람을 조장하게 된다.

 

TV와 인쇄 매체 광고를 통해 끊임 없이 재생산되는 이미지들은 동시대의 아이콘이자 산업 자본의 충실한 대리인이던 헐리우드 스타들과 결합하여 물질적 풍요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중심축이라는 환상을 대중에게 주입하게 되고, 이의 수혜로 코카콜라(Coca-Cola), 캠벨 수프(Campbell Soup) 등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기업들의 상표는 소비자가 갈망하는 제품의 본질 자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팝 아트의 1세대 격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b. 1933) 등은 광고 일러스트, 레이아웃 디자인 등 상업미술 분야에서 종사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매 시즌마다 또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임의로 이미지를 생산하고 왜곡하고 다양한 기법으로 확장하던 이들에게 기존 미술 작품에 요구되던 소재 및 표현 기법의 주관성, 창조에 대한 강박증, 제작 과정의 엄밀성 등은 진부한 억압으로 느껴졌고, 이들이 시도한 즉흥적이고 몰개성적인 이미지를 캔버스에 복제하듯한 기계적인 제작 방식은 팝아트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자 테크닉으로 자리잡게 된다. 매체를 통해 무한 반복되던 캠벨 수프(Campbell Soup) 이미지는 수퍼마켓 진열장에도 가득했고, 황량한 도시 외곽에 자리잡은 갤러리 벽면에도 자리잡게 된다. 본질은 다르지만 같은 이미지로 포장된 오브제들, 팝아트는 물질만능주의를 표방한 전후 미국의 사회상이 탄생시킨 새로운 미술 사조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