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페인터스 II: 폴크 게르네그로스,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헨리에테 그라너트, 토비아스 레너
갤러리바톤은 21세기 최초의 진정한 예술적 현상(The 21st century’s first bona fide artistic phenomenon)이라는 평가와 함께 90년대 이후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 대표작가 그룹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1년 가을에 1차로 소개된 4명(Axel Krause, Christian Brandl, Rosa Loy, Tilo Baumgartel)의 그룹전에 대한 미술 애호가들의 뜨거운 관심에 부응코자 기획되었으며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4명의 젊은 작가를 추가로 소개한다.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 출신 젊은 미술가들이 파격적인 주제와 작품 소재의 극한을 시험하며 국제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yBa(Young British Artists)로 세계 미술사조에 큰 자취를 남겼듯이, 라이프치히 작가들은 소위 New Leipzig School이라고 불리면서 yBa와 함께 유럽이 지정학적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주류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중국이 마오시대(Mao Zedong)의 정치/사회적인 유산을 자양분으로 Political Pop Art라는 특유의 미술사조를 발전시켜온 것처럼, 라이프치히 또한 구동독(East Germany, German Democratic Republic, 1949-1990) 지역이라는 역사적 특수성과 이로 인한 공간적 단절 및 표현 자유의 제한을 경험하였고 이는 라이프치히 작가(Leipzig Painters)라는 차별성을 구축하게끔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 냉전시대에 라이프치히를 감싸던 철의 장막(Iron Curtain)은 단순히 지역적인 고립만을 야기하는데에서 더 나아가 2차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숨가쁘게 진행되어온 신 미술사조의 큰 흐름에서도 역설적으로 라이프치히 미술계를 ‘지켜주게’ 되는데, 즉, 전통적인 회화가 강조하던 인체의 표현, 원근법, 배색, 화면 구성 등에 충실한 풍토가 중시되고 지속될 수 있는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전통적인 구상회화의 중시, 사회주의 미술(Socialist Realism)의 획일성 등 공산정권 치하의 미술계가 가졌던 특징이자 한계는 통일 독일 출범 후 라이프치히가 목도한 사회적 현상, 즉 급작스러운 정치 사회적인 격변, 고실업률 및 인구의 감소, 이데올로기적 혼돈, 파괴와 건설의 혼재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고전적인 테크닉으로 무장한 라이프치히 작가들에게 풍부한 창작의 소재로 작용했음을 관찰할 수 있다 .
2011년 가을의 1차 그룹전이 전통적인 회화기법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라이프치히 작가들의 특징을 잘 대변하고 있는 작가 위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보다 추상적인 요소와 실험적인 기법을 활발히 차용함으로써 New Leipzig School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 폴크 게르네그로스 (Falk Gernegroß, b. 1973)
게르네그로스는 인물 중심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르네상스 또는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인물의 모습에서 표정 등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그의 표현 방식은 작품에 누드 또는 성적인 묘사가 흔히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에로티시즘의 발현을 차단하는 장치적 구실을 한다.
*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Christoph Ruckhaberle, b. 1972)
루크헤베를레는 전통적 형식미를 강조한 구상화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라이프치히 화풍의 전통을 잘 따르고 있는 듯 보이나, 대상이 가진 외형적 특징을 재해석하여 원색이 강조된 이미지를 평면 또는 다차원이 혼합된 공간에 풀어 놓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Untitled〉 시리즈는 마치 뒤섞여버린 두 세개의 각기 다른 퍼즐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끼워 맞춘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원래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을 긴장감과 구상적 의도가 드러나기보다는 재배치된 각 신체 기관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경쾌한 하모니와 묘한 불균형이 강조됨을 알 수 있다.
* 헨리에테 그라너트 (Henriette Grahnert, b. 1977)
그라너트 구상과 추상의 영역을 넘나들며 특정한 주제와 표현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데에서 더 나아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등 기존 대가들의 화풍을 차용하여 실험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라이프치히 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Shattered-painting’ 기법을 통해 의도적으로 캔버스를 손상시키거나 이질적인 얼룩을 남김으로써 캔버스가 가진 평면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기하학적 이미지들을 무작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를 탐구하게끔 이끈다. 반면, 〈My inner beauty may speak to you〉와 같이 전통적인 회화적 기법을 통해 표현된 텍스트 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팝 아트적 언어유희를 보여주고 있는데, 파스텔 색조로 정교하게 묘사된 각 단어를 의도적으로 공간 배분함으로써 문장과 각각의 단어, 내포한 의미 사이의 연관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
* 토비아스 레너 (Tobias Lehner, b. 1974)
4명의 작가 중 유일하게 추상 영역에 속해있는 레너의 작품은 음악이 전달 매개체인 공기를 타고 공간으로 펴져나가는 방식의 시각화를 추구한다. 음악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미지들은 음악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듯 자유로운 유동체가 되어 캔버스 위에 표현되었고, 마치 습지로 흘러드는 강의 지류와 같은 형태를 띄며 복잡하고 촘촘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들과 기하학적 도형간의 뚜렷한 대비, 그리고 음악이 흐르듯 퍼져나가는 이미지들이 인접한 빈 공간과의 엮어내는 유기적 하모니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