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반덴버그: Abstract Works
갤러리바톤은 필립 반덴버그(Philippe Vandenberg, 1952-2009)의 개인전, 《Abstract Works》를 4월 27일부터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평생에 걸친 문학과 철학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이 작가의 내적인 정신성에 반영되는 방식을 탐구해왔던 반덴버그는, 캔버스를 매개로 이러한 외부의 지적 자극이 자신의 감정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회화를 통해 구현해 내는데 주력해왔다. 반덴버그는 벨기에 및 유럽 지역의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의 발흥을 목도하고 이끈 대표 작가이기도 한데,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삶과 죽음, 물질과 정신 그리고 감정과 반영 등 거대 담론에 깊게 몰두하게 되고 추상성이 한층 강조된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개인적인 체험과 성찰이 깊게 반영된 그의 후기 추상 작품을 선보인다.
반덴버그의 후기 추상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조형적 특징은, 신체적 움직임의 흔적을 따라 거칠게 다뤄진 재료가 층위를 형성하며 이차원 평면에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의 격렬한 반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추상적 결과물은 완결성을 지니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 종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선언적 의미가 큰데,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내밀한 감정 변화에 대한 탐구가 이 시기에 천착해온 지배적인 주제임을 설명해 준다.
그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그린다는 행위는 무척 중요한데, 이를 통해 타자로부터 자신의 의도에 대한 묵시적 동의를 얻기보다는 자신의 작품과 조우함으로서 각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충동을 이끄는데에 있다. 사물의 재현으로부터 자유로운 추상성이 강조된 작품일수록 모두에게 주관적이고 극단적으로 개인적인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평생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페인팅에는 작가의 고통이 담겨있다. 괴로움, 의심, 공황, 아픔, 캔버스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래서 나는 실패로부터 실패를 그리고 기대로부터 기대를 그린다."
그에게 있어 오랫동안 이어져온 관습 및 전통, 더 나아가 자신이 오랫동안 신봉해왔던 신념과 믿음조차도 저항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화가로서의 이러한 고민은 과거에 완성했던 작품에 새롭게 형성된 정신성과 감정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시각화되었다. 이 시기의 여러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작가의 리페인팅(repainting)은 작가 스스로를 비판하고 끊임없이 극한의 결과물을 추구하려고 하는 일종의 몸부림과도 같다. 켜켜이 덧입혀진 물감의 층들은 원시적이고 거친 유기물의 형태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작가의 오랜 고뇌를 드러내는 나이테와도 같다.
한편 단순한 선과 기호, 문장을 거칠게 캔버스에 전개시킨 작품들도 작가가 후기에 몰두해 왔던 주제이다. 일종의 패턴과 방향성을 가지고 평면적으로 나열된 선과 기호들은, 미니멀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읽히기보다는 무언가 작가가 매료되었던 생각과 느낌을 함축해 표현해낸 일종의 상징으로 해석됨이 흥미롭다.
반덴버그는 벨기에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Ghent, Belgium)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유럽을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1986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의 컬렉션에 포함되면서 유력한 벨기에 현대미술 작가로 부상하였다. 1995년 스맥(S.M.A.K, Belgium), 1999년 무학(MuHKA, Belgium), 2012년 듀 퐁 미술관(De Pont Museum), 하우져 워스(Hauser & Wirth, Zurich, London) 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바톤 소속 작가이기도 한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과 공동 큐레이팅 및 Hauser & Wirth 갤러리와의 협업으로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