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스콧 더글라스: 하드 레인
갤러리바톤은 휴 스콧 더글라스(Hugh Scott-Douglas, b. 1988)의 국내 첫 개인전 《하드 레인(Hart Rain》을 5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 개최한다. 스콧 더글라스는 경제적 가치, 무역 항로, 화폐와 상품의 유통 과정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송, 변환, 거래의 형식적, 기술적 방법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레이저 커팅, 잉크젯 프린트, 사진술에서부터 수치 데이터, 위성 지도를 제작하는 소프트웨어 등의 광범위한 기법과 매체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생산 방식의 간극에서 오는 긴장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모두들 날씨에 대해 불평한다. 하지만 무언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
“이 행성이 잉여 생산자들에 의해 운용될 때에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질까? 소위 이 이미지들은 근대 발전의 예시로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심하게 수정될 뿐만 아니라 뷰어들, 더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들에 의해 재차 해석된다. 전형적으로 장소, 날짜, 소유자, 명료성 혹은 여타의 정보 없이 ‘사진’의 형태로 제시되는 한 이런 이미지들은 매우 시각적인 수용성을 가지나 사실 명료하거나 직접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 T.J. 데모스, 『인류세에 대한 대응: 오늘날 시각적 문화의 환경』 2017.**
작가는 생산과 연계된 조건들이 제조업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의구심에 기초한 작업에 전념해왔다. 이러한 관심은 초기 시아노 타입 블루 프린트, 기술 복제 시대의 아날로그 기술, 위조 방지 방안, 위장 상태의 감시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2016년 이후로는 자연을 테마로 작업을 하고 자연과 자본주의와의 상관관계를 다루어왔다. 이번 전시는 그가 천착해 온 기존 작업과 개념적으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소멸의 개념과 연관된 홍수 사태를 주제로 논하며 작가의 그 간의 작업에 있어서 네 번째 장으로 간주된다.
이번 전시 《하드 레인(Hart Rain》은 처음으로 작가의 중심적인 두 가지 연작을 선보인다. 두 연작은 모두 자연의 경험적, 과학적 요소를 추상화하고 계량화하려는 자본가들의 시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산업과 상업의 고유한 도구를 사용한다. 작품들은 가치 생산과 노동이 조직화된 서비스에서 애매하고 혼란스럽게 위치한 자연의 여러 형태들을 묘사하고 있다.
무역풍(Trade Winds)은 작가의 지속적인 이미지와 물체에 대한 관심에서 탄생한 인쇄-페인팅 연작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이 연작은 생산과 유통을 이어주는 상업 네트워크의 존재로 인한 일종의 피해자로서 묘사된다. 스콧 더글라스는 이 연작을 위해서 해상 운송을 추적하는데 사용하는 특정 물류 산업용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플릿몬(FleetMon)을 사용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바다의 근본적인 기후 패턴 이미지로 생성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이미지를 파일화한다. 그래픽 버전이 아닌 유기적인 해류와 풍류의 방향을 내포하는 바다의 실제 외형은 그의 작품에서 그래프 형식으로 정량화된다. 포착한 이미지는 물질적, 색채적 조작을 거쳐 스크린 프린팅의 아날로그적 처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인쇄되고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감추어버린다. 가장 최근의 작업에서는 작가가 직접 만든 아크릴 물감을 포함한 아크릴 매체, 유화 물감으로 칠한 흰색 화면 위로 인쇄를 하고 이미지를 가득 채웠다. 궁극적으로 인쇄 기계에 의해 모든 내용이 은폐되는데 작가는 이를 본래의 흔적을 지워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한다.
〈자연사(Natural History)〉 연작은 뉴욕 미국 자연사박물관 내에서도 밀스타인가 해양생물관(Milstein Family Hall of Ocean Life)에서 전시된 야생 동식물 모형의 주변부를 촬영하고 그 사진을 활용해 작업한 프린트 회화이다. 바닷속 현실과는 정반대로, 박물관은 이상적이고 변함없는 생태계를 홍보할 목적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로의 해저 환경을 연출한다. 전지적 관점과 유사한 박물관적 관점은 식민주의 역사를 수반하며 과학적 당위성을 강조한다. 모종의 약속과도 같은 이 모형들은 관람객들에게 대안적이고 낙관적인 인공 행성을 연상시키는 관문과도 같다. 말하자면 금본위 제도하 자본주의의 소비 만능 체제아래 조작된 바닷속 모습은 실제 현실에 대한 반박이나 의문을 멈추도록 하고 대중의 만족스러운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제안된 대안인 것이다. 자본주의가들의 이미지에 대한 논의 과정을 도용한 스콧 더글라스는 일련의 인위적 중재자로서 이러한 사이비 세계를 사진으로 촬영하고 가공한다.
작업은 진열용 유리장의 유리벽과 카메라 렌즈에서 시작하여, 디지털 사진화를 통해 본래의 흔적을 효과적으로 지워내는 연속적인 과정에 있다. 전형적인 플라스틱 모형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다양한 효과를 사용하는 일련의 순서화된 절차를 수행하고 디지털 전송과 디지털 프린팅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프린트를 고정하는 틀은 작업실에서 작품 운송과 보호를 위해 구입한 합성 재료를 이용해 만든다. 이 다층적 과정은 플라스틱 기술을 통해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자연스럽고 기교적인 수동적 장면으로 재현해낼 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환경을 완전히 제거해버린 자료들을 추상화시킴으로서 작가적 표현의 정점에 이른다.
스콧 더글라스는 온타리오 예술 디자인 대학(Ontario College of Art and Design, Toronto)에서 조각과 석사를 수여받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New York)에서 수학했다. 2016년 토치기 미술관(Tochigi Prefectural Museum of Fine Arts, Tochigi)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데코르도바 조각 공원 미술관(deCordova Sculpture Park and Museum, Lincoln), 콜럼버스 미술관(Columbus Museum of Art, Columbus), 바덴바덴 미술관(Staatliche Kunsthalle Baden-Baden, Baden-Baden), 요코하마 미술관(Yokohama Museum of Art, Yokohama), 시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an Francisco),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 Venice), 댈러스 미술관(Dallas Museum of Art, Dallas) 등에 소장되어 있다.
* Charles Dudley Warner(1829-1900), 19세기 미국 소설가
** 원제: T.J. Demos, 『‘Against the Anthropocene: Visual Culture and Environment Today』 베를린: Sternberg Press, 2017.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말한다. T.J. 데모스(b. 1966)는 미술 평론가이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아트포럼, 아트저널 및 여러 미술 전문지에 근현대 미술에 대한 논평을 투고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대학의 예술, 시각 문화의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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