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보지 못했던 길: 맷 코너스, 알렉스 도르도이, 노에미 구달, 짐 람비, 빅토리아 몰튼, 지 신

18 May - 18 Jun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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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바톤은 국제적 명성의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로 기획한 그룹전, 《Off the Beaten Track(당신이 가보지 못했던 길)》을 2022년 5월 18일부터 6월 18일까지 개최한다.

유행은 다양한 사회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요인과 맞물려 있다. 계절과 지역에 따라 특정한 시기에 발생하는 해풍과 조류가 초창기 대륙 간 무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듯이, 한 시기를 풍미하고 소멸되는 유행의 존재는 우리 각자의 취향을 발견하게 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특히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 기술과 IT 문화의 발달로 전지구가 점점 동일 생활권에 가까워진 현재에는 그 유행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이상 지배적인 유행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나팔바지를 입거나, 디스코에 심취하거나, 화려한 캐스팅의 할리우드 대작에 현혹되지 않는 시대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산책하면서 느낀 감상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고백록과도 같은 전원풍의 시는 그 평이한 어조와 달리 매일의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향로에 관한 심오한 주제와 맞닿아 있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제한된 시간 안에서 방문지를 선택해야 함은 동시에 다른 공간을 포기해야 함을 뜻한다. 이와 같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취해 온 선택의 합이라고도 할 수 있고 비가역적인 시간의 성질은 이러한 선택의 결과를 되돌릴 수 없기에, 유행의 존재는 선택을 강요받은 우리에게 퇴로와 안도감을 주며 후회의 가능성을 경감해 준다.

반면, 유행과 취향은 대척점에 놓여 있다. 미술 감상이란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재화시키는 과정이기에,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미술계에서 유행이란 그다지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특히, 패션, 디자인 등 다른 영역과의 컨버전스가 일상화된 상황에서는 매체를 통해 침투하는 특정한 사조와 경향의 영향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큐레이팅”이라는 진부하게 들리지만 전시에 있어 가장 중시되어야 하는 행위에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 작가와 작품이 왜 소개되어야 하고 그것이 커뮤니티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전시에 깊이를 더하고 작가와 관람자 모두를 존중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은 바톤이 오랫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며 그 행보에 집중해 왔던 작가들이다. 페인팅,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은 그 독창성과 작품을 통해 발현되는 메시지와 심미성으로 서구의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신작으로 참여한다. 바톤의 이정표를 따라 뜻하지 않게 들어선 길에서,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맞이하는 설렘과 차원 높은 고양의 감흥을 누리기를 바란다.

 

사선으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패턴과 이웃한 다양한 색면들을 배경으로 두툼한 주황색 선들이 부유하듯 채색되어 있는 맷 코너스(b. 1973, USA)의 〈Ardent Partner〉(2022)는 기하학적인 형식과 감각적인 분위기를 구현한다. 적층 구조로 발현된 색들이 창조하는 공간감과 색 선들이 교차하며 캔버스에 부여하는 형식미는, 순수 추상의 영역에 창의적으로 접목한 미니멀한 구성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음미하게 한다. 마치, 색유리와 다양한 철골 구조로 여러 겹 중첩된 외부의 정경을 내다보는 듯한 느낌은 입체적으로 표현된 흩뿌려진 점들과 결합하여 캔버스 전반에 생동감 넘치는 역동성을 가져온다.

 

아르누보 시대의 광고나 디자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는 알렉스 도르도이(b. 1985, UK)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색감과 구도에 따라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작 두 점을 선보인다. 〈The Instinct of Flight〉(2022)는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배경으로 티 테이블이 놓인 창가를 멜랑콜리적이고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회색톤의 무채색으로 표현된 식물들은 작품 전반에 보이는 날씨에 대한 암시와 함께 햇빛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테이블 위의 티포트와 급히 던져진 듯한 외투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에 〈Flowers Still for You〉(2022)에서 작가는 화려한 색상으로 식물을 생기있게 담아내며 눈앞에 열대 풍경을 펼쳐 보인다. 작가 특유의 그래픽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그림 안의 영화적인 구성이 대비되며 시적인 효과가 극대화된다.

 

노에미 구달(b. 1984, France)은 정글 등 특정한 장소에 세트를 설치하고 정교하게 촬영된 영상에 다양한 편집 기법과 음향 효과를 동원하여 초현실과 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음 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생 나자르 현대미술관(Saint-Nazaire, France)에서 2021년 10월 초연되었던 작품, 〈Inhale, Exhale〉(2021)은 고요한 열대 습지를 배경으로 야자수와 그것과 흡사한 외형의 장치가 수면 위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제목에서 유추되는 대로 ‘들숨(Inhale)과 날숨(Exhale)’의 인터벌에 따라 삐걱거리는 사운드가 덧입혀진 영상은 초창기 연극의 수동 무대장치를 연상시키며 기괴한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짐 람비(b. 1964, UK)는 벽부터 시작하여 공간 중앙까지 다른 색의 둘레로 채워나가는 사이키델릭한 바닥 작업 시리즈로, 블루바톤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 〈Zobop (Wild Poppy)〉(2021)을 선보인다. 붉은색 계열의 그러데이션에 흰색, 은색 등 무채색이 주기적으로 구획하는 구조는 갤러리의 부속 공간에 불과했던 바닥에 예기치 않던 스피드감을 주고 주변의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능동적인 대상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작가가 직접 선별한 다양한 색상의 선글라스 렌즈를 정교하게 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 〈Sun Necklace〉(2022)은 다채롭게 흩뿌려진 빛의 찬란함을 보여주며 ‘레디메이드’ 스테인드글라스로 기능한다.

 

빅토리아 몰튼(b. 1971, UK)은 색의 온도감, 브러시의 방향성과 속도, 선과 도형이 빚어내는 국지적인 충돌과 화합이 전면에 걸쳐 등장하는 추상 작품을 선보여 왔다. 대작인 〈About Listening〉(2021)은 한 편의 실내악의 운율과 음의 고저, 청취자와의 상호 작용의 도해가 응축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채로운 색채 사용과 함께 도형과 형상, 직선과 사선의 자유로운 표현은 화음과 불협화음을 오가며 서로의 영역을 즐겁게 침범하는 듯하다. 작가가 특정한 시기 동안 집중해온 감정의 시각적 분출과 같은 그녀의 화풍은, 오토마티즘의 현대적 해석으로도 읽히며 뚜렷한 직관성을 매개로 관람객에게 감각적이고 지적인 해석을 유도한다.

지 신(b. 1988, China)은 중국의 고전적인 인물 화풍을 계승하고, 이를 현대적인 회화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순간 포착된 듯한 여성들이 정적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의 다양한 변용을 보여줘 왔던 작가는,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감과 이미지와 색채 간의 균형을 중시하며 전통적인 동양 미학의 형식을 적극 수용한다. 베르메르의 걸작과 같은 제목의 〈Girl with Pearl Earrings〉(2022)는 서정적인 묘사에 충실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의 옆모습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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