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모

1 October - 9 Nov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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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갤러리바톤은 정은모 (Chung Eun-Mo, b.1946)의 개인전을 2024년 10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한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196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줄곧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며 독창적인 기하추상의 영역을 개척해 온 작가는, 근 이십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전시를 통해 한층 더 원숙해진 화풍을 선보인다. 화폭에 이식된 건축적 구조 안에서 색의 대비, 상호 간의 균형이 돋보이는 정은모의 작품은, 단색화로 대표되는 동시대 한국 추상의 전개 과정에서 드물게 독자적으로 기하추상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기하추상의 대표적인 특징인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비재현성”은 서사나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은 순수한 시각적 경험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특징은 정은모의 작품에서도 기본 토대를 이루고 있지만, 자신이 보고 경험한 장소 또는 장면에서 출발하여 도형 간의 거리와 크기, 독립적이거나 인접한 색면끼리의 유기적인 조화를 구현하여 건축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물론, 기하추상에서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요소가 질서와 균형, 계산된 공간의 분할 등 현대 건축의 기초적인 문법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작가의 접근 방식을 통해 구현된 작품이 가지는 은밀한 공간성은 “평면성의 강조”라는 기하추상의 양식적 특성에 대해 오랜 기간의 탐구하고 내재화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은밀한 공간성”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3차원의 환영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랜 기간 화면을 응시하여만 드러나는 특성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C2212〉(2022)의 경우 오른쪽에 위치한 중첩된 사각형들의 조합이 왼쪽의 연옥색 직사각형 보다 위쪽에 위치, 인접한 검은색의 다각형들과 중앙부 하단에 두텁게 칠해진 황토색의 배경과 결합하여 원근 효과와 함께 두 도상의 뒷편에 입체적인 공간을 창출한다. 〈C2124〉(2021)는 작가가 가진 건축적 구조에 대한 열망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경우인데, 화면의 오른쪽 상단을 크게 차지한 “ㄱ”자 형태의 도형은 3차원 음영 효과를 덧입어 미니멀하게 표현된 건물의 외양과 무척 흡사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모더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파생된 국제주의 건축 양식의 중심국이 이탈리아인 점을 감안할 때, 정은모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구조의 발현은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이미지들이 창의적으로 취사선택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작가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국을 떠나 생의 대부분을 서구권에서 학업을 마치고 생활해왔음에도, 정은모의 작품에서는 색상과 톤, 질감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동양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기하추상과 그 계보를 승계한 60년대 하드에지 페인팅(Hard-edge painting)이 기하학적 도상의 채색 방식에 있어 비개성적이고 공업적인 특성의 두드러짐이라면, 작가의 작품은 린넨 캔버스의 표면이 붓질을 통해 은은히 드러나고 파스텔톤의 색이 화면에 비중 있게 사용되고 있다. 마치 고려청자의 이차원 표면이 진흙과 채색, 유약과 굽기를 통해 아득한 깊이를 가진 색조를 드러내듯, 정은모의 기하추상은 질서 있고 논리적인 구조의 실현이라는 기존 도식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경험과 개인적인 성찰, 심상의 결을 보다 부드럽고 정돈된 형태로 구현한다.


작가 소개

정은모는 1960년대 중반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뉴욕, 로마, 뮌헨,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아일랜드 현대미술관 개인전(1994)에서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을 선 보이며 큰 호평을 받았다. 작품은 영국 얼스터 박물관, 독일 렌바흐하우스 시립미술관, 이탈리아 테르니 현대미술관, 아일랜드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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