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오케인: The Zoetrope—Repetition & Difference
갤러리바톤은 아일랜드 페인터, 데이비드 오케인(David O’Kane, b. 1985)의 개인전 《The Zoetrope—Repetition & Difference》을 6월 3일부터 7월 12일까지 압구정동 전시공간에서 개최한다.
아일랜드의 미술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더블린에서 미술학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라이프치히의 Academy of Visual Arts로 진학하여, 작가로써의 국제적인 명성과 함께 New Leipzig School(NLS)이 1990년대 이후 주류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한 장본인인 네오 라우흐(Neo Rauch, b. 1960) 아래서 5년간 사사했다.
약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미술가를 위한 아일랜드의 권위있는 미술상인 Golden Fleece Award의 2014년 수상자로 결정되었고, 그 외 다수의 미술상 수상, 세계 각지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개최 등 차세대 대형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탄탄한 기반을 다져오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선보일 메인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Zoetrope〉은 회전하게 만든 여러 장의 그림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환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초기 애니메이션 기구의 명칭이다. Zoetrope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동영상화되어 반복재생되며 유한한 시간속에 무한대의 루프를 생성하는데, 전지적 관점에서 현실과 이상의 갈래 속에서 매일 일상의 반복을 경험하는 인간의 삶을 은유하기도 한다.
작품에서 벽면을 응시하며 원 안에서 미로를 하나 하나씩 헤쳐나가는 소년이 현실인지, 아니면 원의 바깥 공간이 현실의 영역이고 소년은 단지 환영에 불과한 존재인지가 미지인 것처럼.
회화와 사진, 에니메이션, 영화,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를 향유하는 데이비드의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통상 각각의 장르는 특정 전시와 테마를 위해 기획되지 않는 한 상호 단절적이기 쉬운데 그의 작품에 있어서는 공생적인 관계임이 관찰된다. 박제된 순간, 끝나버린 소우주와 같은 정적(static) 상태의 회화는 동시에 영화의 한 프레임처럼 동적(dynamic) 역할을 부여 받아 작품에 어려있는 스토리와 상황을 순간순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도 24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Looking Back〉 시리즈가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도 제작, 소개될 예정이다.) 이러한 장르간의 긴밀한 연계성(특히 회화와 애니메이션)은 종종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는 회화의 형식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즉 인물이 중앙 또는 화면 분할의 주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인물을 둘러싼 공간, 비례, 소품 등 모든 것에 저마다의 역할이 부여되게끔 구성되는 것이다. “그림에서 유용하지 않은 모든 부분은 유해하다, 예술작품은 전체의 조화를 함의한다”라고 했던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언급은 데이비드의 작업에 있어 기능적인 메뉴얼로 간주될 수 있다.
Leipzig Painter의 특징적인 요소(시각적으로 확연히 분별 가능한 이미지들이 배열되어 있음에도 불분명한 등장인물의 행위와 의도, 시공간이 뒤틀어진듯한 연출)에 의한 영향을 차치하고라도, 철저히 구상회화를 기반으로 한 데이비드의 작품은 다분히 몽환적이고 예측 가능한 현실과 유리된 상황을 묘사한다. 꿈의 잔상,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된 수많은 스토리와 영화에 대한 기억의 편린, 우리의 의식 속에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물리적 현상과 같이, 시각적으로는 각각의 이름과 역할, 쓰임새를 감지할 수 있으나 함께 공존하는 모습에서는 앞에 일어난 일과 지금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는듯한 인물, 그들과 연계된 행동과 공간은 관람자로 하여금 해당 작품의 구상적 모티브가 분명히 작가만 알고 있는 스토리나 사건을 기반으로 했을것이라는 가정을 하게끔 유도하고,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형식적 가치 그 너머의 심리적 가치를 찾는데 주력하게끔 이끈다.
작가는 이와 같이 서사성이 있음직한 인물과, 시대 배경, 역사를 반복시키고 불가사의한 분위기 위에 재배치 시킴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환경과 상황으로 이끈다. 마치 입자가속기나 첨단 화학실험실에 처음으로 방문한 방문객처럼 우리는 극소수의 인물들만 공유하는 비밀의 공간과 거기서 파생된 상황들의 단초를 곱씹어보며, 작가의 조형의지의 원초가 되었던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 어릴적 내밀한 기억의 원천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