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can Hannah: Pleasures & Follies

4 July - 4 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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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갤러리바톤은 미국 페인터 던컨 한나(Duncan Hannah, b.1953)의 개인전 《Pleasures and Follies》를 7월 4일부터 8월 4일까지 개최합니다.

 

20세기 아메리칸 아트를 자신만의 세련된 필치와 현대적 해석을 통해 발전시켜온 던컨은 한국 등 아시아권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2011 미국 Guggenheim Fellow에 선정되었고 뉴욕 Metropolitan Museum, Art Institute of Chicago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는 등 작품성과 미술사적 진가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피츠 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 American)가 묘사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1925)적 시대가 던컨의 주 무대입니다. 그 당시 미국, 특히 동부 지역은 유럽을 휩쓴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빗겨간, 서구 사회의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 안식처이자 그들의 선조가 유럽 본토에서 향유하던 귀족적 전통 양식과 산업혁명의 결실이 합쳐지며 미국적 물질적 풍요가 막 도드라지던 시점이었습니다.

 

뉴욕, 코네티컷 등 미 동부의 주요 도시들은 신대륙 이민 초기 상류층 이민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하며 유럽적 문화의 미국화를 주도하고 인접한 아이비리그(Ivy League)의 산파 역할을 통해 자신들만의 배타적인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를 구축한 도시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역들은 던컨의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버지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였고, 던컨 자신도 20대에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맨하탄으로 떠나오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으며 수십 년간 코네티컷에 주말마다 방문하는 등 전 생애에 걸쳐 미 동부의 WASP 문화는 그에게 있어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껏 차려 입은 신여성들이 고급 레스토랑 주위를 배회하거나, 대학가 근처 젊은이들이 회합하는 모습,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호수가를 미끄러져나가는 요트, 고급 자동차들의 주행 장면들은 우리에게도 미국 또는 영국의 영화나 방송 매체를 통해 익숙한 장면들입니다. 던컨은 자신만의 필치로 우리를 20세기 초 미국 또는 영국의 어느 곳으로 이끕니다. 사실 200년 이상된 석조 건물들이 건재한 그 도시들을 떠 올려본다면 작가가 묘사하는 시점이 꼭 과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던컨이 뉴욕의 Parsons School을 졸업하고 작가로써 첫 발을 디딘 시점은 미국에서 팝 아트(Pop Art)가 태동하고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등이 동(同) 사조를 서구 현대미술의 대표적 장르로 자리잡게 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작가와 앤디 워홀은 자주 교류하던 관계였는데, 전통적인 20세기 아메리칸 아트에 자신만의 개성을 접목하고자 했던 던컨이 팝 아트의 창시자격인 앤디 워홀과 친분이 있던 관계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근 사십여 년간 아메리칸 아트의 현대적 계승에 힘써온 작가의 화풍이 팝 아트(Pop Art), 미니멀리즘(Minimalism), 개념미술(Conceptual Art) 등 전후 미국이 주도했던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도도히 유지될 수 있었던 점은, 그가 가진 회화(Painting)의 근원에 대한 심오한 고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상회화(Figurative Painting)의 ‘스스로의 제한성’(가상의 공간과 대상이 캔버스에 묘사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창작이라는 행위로 포장된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작가의 의도적/무의식적 차용’)은, 앤디 워홀 등 팝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마릴린 먼로, 켐벨 스프 등 ‘레디메이드(Ready made)’된 이미지를 차용케 했고, 던컨에게는 상실된 시간, 사라진 장소이지만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영국적 이상향(Anglophile Arcadia)의 구현을 추구하게끔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화풍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가치관은 예술적 표현의 스펙트럼이 극한까지 확대된 현대에 와서 자칫 고루하고 몰개성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자신만의 작업 방식의 성숙화를 꾸준히 추구하게끔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던컨의 작품에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작품에서 느낄법한 화려한 듯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소외되고 쓸쓸한 군상들이 엿보이고, 월터 지커트(Walter Sickert, 1860-1942)가 애용하던 여인의 누드가 자주 등장함에도, 던컨의 화풍을 단순이 선대 거장들의 아류라고 지칭하는 오류에 빠질 위험에서 구해냅니다. 

 

새로움에 대한 병적인 추구,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이미지의 범람이 현대미술의 전부인 양 인식되기도 하지만, 던컨은 숙련된 페인팅 기법과 과거 속으로 사라진 미국적 노스탤지아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미적 연금술을 통해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들이 이질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