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몰리: 키스 미 데들리

11 March - 11 Apri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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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갤러리바톤은 사이먼 몰리(Simon Morley, b. 1958)의 개인전 《키스 미 데들리(Kiss Me Deadly)》를 2015년 3월 11일부터 4월 11일까지 압구정동 전시공간에서 개최한다.

 

사이먼 몰리는 이번 전시에서 영화의 특정 장면과 문학적 텍스트를 단색 회화에 접목시킨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인 《키스 미 데들리》는 영화 감독 로버트 알드리치(Robert Aldrich)의 1955년 할리우드 고전 느와르 영화이다. 극중 사립탐정으로 분한 랄프 마커(Ralph Meeker)는 방사성 폐기물를 훔치려는 계략을 무산시키는 과정에서 여러명의 여성들과 키스를 나누게 된다. 본질적으로 냉전의 이면을 다룬 이 영화는 ‘키스’라는 행위와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위협을 분명하게 연관지어 드러낸다.

 

사이먼 몰리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하게되는 시각적 경험은 경계가 모호한 색면 가운데서 천천히 드러나는 이미 지와 텍스트들이다. 캔버스 표면의 문자 또는 단어들은 대부분 그가 수집한 정치, 심리, 문학, 철학 그리고 종교 서적에서 발췌된 것이다. 발췌된 단어들은 지적인 사고, 역사의 해석, 의미와 가치에 대한 탐구 등 인류의 지적유산과 연결되어 있지만, 생략과 무작위적 배열로 인해 본래의 맥락과 의미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조합으로 드러나게 된다. ‘American Typewriter’ 서체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단어들은 주변보다 한 톤 밝은 색조의 양각으로 표현되었는데, 그림자를 동반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보이며 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나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불명료함을 통해서 묻혀져 있거나, 억압되어져 깊은 곳으로 부터 떠올라, 점차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어떠한 것을 제시하고 싶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시각적으로 미흡하게 구조화된 것으로, 이는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거나, 마치 황혼이 진 곳에서의 경험과도 같다.” — 작가노트 중

 

문자들의 뒤로는 약하게 대비된 색들의 무작위적인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천천히 색들의 구성을 살피다보면, 색면의 흔적들이 연결지어져 큰 화면 안에서 안정적인 하나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영화에서 등장하는 키스 장면을 차용한 것인데 스토리의 전개와는 유리된 이미지들은 생소한 느낌을 선사한다. 한 작품에서는 〈키스 미 데들리〉의 키스 장면만을 차용하였으며, 다른 작품 속에서는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제목의 타이포그래피만을 이용하였다. 사이먼 몰리의 작품 속 단색조는 감각적이지만 은은하고, 이미지와 문구 사이에는 어떠한 의식적인 연관도 없다. 그는 이미지와 단어 사이에, 혹은 앞의 두 요소와 색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없도록 의도하는 한편, 서두에 언급한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흔적 속 뒤죽박죽 섞인 얼룩들은 하나의 연결된 구성으로 조직하여, 자연스럽게 의미가 연관성을 띄도록 설정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수납장을 한지로 덮은 비디오 설치작인 〈Peep Show〉(2015)도 함께 전시되는데, 수납장 앞부 분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관람객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Vertigo)〉(1958)이 역방향의 느린 속도로 반복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키스를 하고 있는 두 배우 킴 노박(Kim Novak)과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를 360도 회전 쇼트로 찍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키스’라는 주제로 두 고전 영화의 미학적 연결점 을 찾으려고 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사이먼 몰리가 5년간의 한국 체류에서 얻은 경험과 작가로서 받아온 지적, 감성적 자극에 대한 시각적 결실이자 충만한 표현이 될 이번 《키스 미 데들리》전은, 2015년 3월 11일부터 4월 11일까지 갤러리바톤의 압구정동 전시공간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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