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금: 오마주 투 유—자본과 사랑

2 June - 2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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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바톤은 고산금(Koh San Keum, b. 1966) 작가의 개인전, 《오마주 투 유—자본과 사랑(Hommage to you—Capital and Love)》을 2016년 6월 2일부터 7월 2일까지 개최한다.

 

고산금 작가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보다 엄밀하게 말해 개별 인간의 사유를 사회관습적 체계 안에 규정시킨 '인문과학 텍스트'가 작가의 주된 관심사이자 최종 결과물의 모태가 되는 주제이다. 언어로 이루어진 복합체이자 지각에 반응하는 텍스트는 작가에 의해 ‘차용(Appropriation)'과 ‘변형(Transformation)'의 단계를 거치며 의미전달의 기능은 사라지게 되고 시각에만 반응하는 구조주의적 작품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는 차용된 텍스트와의 의미론적/관념적 관계의 일종의 종결 선언과도 같다.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관계는 자의적(arbitrary)이라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 스위스)의 주장처럼 실제 사물과 자의적인 관계를 형성하던 텍스트들은 작가의 작품화 과정을 통해 인공진주의 군집 형태로 변환되면서 오직 좌표와 개수(단어 수 만큼의 인공진주)의 정보만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정보는 작품에 부여된 제목과 더불어 원천이 되었던 텍스트를 짐작하게끔 하는 일종의 프로토콜로 존재하게 된다.

 

소설, 신문, 시, 철학서, 법전 등 사회적 기호로서 소비되는 텍스트를 물질적 오브제로 전환하는 과정은, 글자의 수와 글자들 사이의 간격을 기준으로 4mm의 인공구슬을 일일이 손수 패널 위에 배치하는 강도 높은 수공의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문장의 의미론적 맥락이 감춰지게 되며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과 에너지, 글자들이 만들어 내는 시각적 조형성과 심미성이 부각된다. 진주구슬로 옮겨진 텍스트는 기호로서의 기능적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탈국가적 탈민족적 상태로 승화되며, 인간의 시각에 기반을 두고 반응하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일종의 새로운 차원의 언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번 전시 제목인 《오마주 투 유—자본과 사랑》이 시사하듯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으로 자본소득의 실체와 경제적 불평등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론』을 삼았다.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고리오 영감』,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레미제라블』 등 이 서적에서 언급된 19세기 리얼리즘 소설 중 현대사회의 자본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페이지를 선별하여 이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자본에 대해 인간과 사회가 견지하여왔던 관점을 자신의 방식대로 환기시켜 보고 싶었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아간 대문호들이 관찰한 돈에 얽힌 인간사와 사회적 함수관계에 대한 묘사는 작가를 거쳐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는 인공진주의 연속된 행렬로 표현된다. 좌표와 개수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부여받은 단어와 문장들은 현대 사회에서 유동적인 재화가 존재하는 구조적 방식과도 유사한데, 이를 통해 엄밀히 매개의 수단에 불과한 자본의 비정상적인 증식과 침투,  비물질적 주체가 가진 비이성적인 권력의 심화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회화과 학사와 미국 Pratt Institute에서 MFA를 마치고 국립현대미술관 《단색화: 한국 모노크롬 페인팅, Dansaekhwa: Korea Monochrome Painting》(2012), 북서울미술관, 성곡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활발한 전시를 이어온 고산금 작가의 갤러리바톤 첫 번째 개인전은 6월 2일부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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