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메인 크루프: 애프터 이미지 (After Image)
갤러리바톤은 저메인 크루프(Germaine Kruip, b. 1970)의 개인전 《After Image》를 KW 베를린 관장 크리스트 그루잇휘젠(Krist Gruijthuijsen, the director of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의 기획으로 2월 22일부터 3월 23일까지 개최한다.
네덜란드 태생의 크루프는 지난 20년간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의 지각을 융합하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무대 연출에 대한 작가의 경험은 자신이 관찰하고 연구한 대상을 건축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시공간에서 시현하고 체험되는 방식에 대한, 미학적 탐구로 결실을 맺어 왔다. 이러한 대상과 매체 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작가는 연극에서 실질적으로 부재하는 관객을 배우로, 무대 밖 장소를 무대로 전환한다. 이로써 관람자의 신체 인식과 심리 의식을 모두 활성화시킨다.
갤러리바톤과의 첫 전시인 《After Image》에서 작가는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간에서 대두되는 '동시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전 작품들과 근작이 결합된 구성을 선보인다. 동시성의 개념은 ‘현실 혹은 실제 상황’으로 간주되는 메커니즘에 의해서 강조된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자연스럽고 동시에 인위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개인의 근간을 이룬다. 블루 바톤(Blue Baton)에서 시현되는 초기 작품인 〈Two Seconds〉(2000)는 대형 창문 앞에 미술관용 벤치를 놓음으로써 극장과 영화관의 장치를 해체시킨다. 이 작품에서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로 간주되고, 작가는 전시 공간이 스스로 내부에서 외부 거리를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대립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거리에서 발생한 소리는 2초 정도 지연되어 전시장 안으로 실시간 전송되고, 이는 우리가 관찰하는 일상적인 광경이 주는 익숙함을 교란시킨다.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퍼포먼스 작품 〈I See a Landscape〉(2004-2019)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b. 1930)가 시적인 의미에서 무엇이 관찰되고 무엇을 현실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발췌한 독백이다. 이는 작가의 수행성을 전수받은 갤러리 직원이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작가가 지정한 대본을 낭독하고 친밀한 생각을 공유하는 식으로 전시 기간 내 구현된다.
메인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벽에 설치된 무대 또는 극장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큰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After Image〉(2019)는 작가가 극장 공간을 영화적 경험으로 변형시킨 작품 〈A Possibility of an Abstraction〉(2014-)에 대한 방대한 연구에서 기인했다. 이 작품은 그림자, 반사, 건축 양식과 무대 등 부차적 요소들이 영화 같은 환경 속에서 순간순간 등장인물화하는 일종의 인식 놀이이다. 영화가 발명되기 전 꼭두각시놀이나 그림자놀이와 유사하게, 작가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스크린 대신 무대 맞은편에서 조명을 통제함으로써 마치 영화 같은 효과와 분위기를 조성한다. 영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 사이를 오가며, 〈A Possibility of an Abstraction〉은 착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는 우리의 지각 속 가장자리에 명상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작가는 극장에 설치했던 작품의 한 장면을 갤러리 공간에 어울리는 형태로 옮겨냈다. 투사된 직사각형이 천천히 양(positive)에서 음(negative)으로 전환하는 화면은 사진을 촬영하고 문서화하는 과정과 유사한데,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경험을 상기시킨다. 전환이 지속되는 시간은 블루 바톤에 설치된 조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작품 〈Rehearsal〉(2002-2019)은 조명이 천천히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며 갤러리를 가상의 연극 무대로 전환시킨다.
작가가 현실 그 자체와 사진 등 이와 연관된 기록을 인지하는 방식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수집해 온 사진 아카이브인 〈Image Archive〉(2004-)를 통해 명백히 나타난다. 동기화된 두 대의 프로젝터는 신문에서 발췌한 보도사진과 미술사적 이미지가 담긴 35mm 슬라이드 필름으로 구성되어 벽에 동시에 투사된다. 신문 속 사진이 객관적인 표현을 시사하는 반면에, 유사한 이미지가 다른 맥락에서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미 제시된 객관성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또한, 대량 생산되었지만 각기 독특한 음색을 지닌 악기를 통해 작가는 동시성과 반복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작가는 2017년부터 아방가르드 작곡가들과 실험적인 공동 작업으로 유명한 독일 악기 제조업체 타인(Thein Brass)과 협력해왔다. 첫 작업에서는 삼각형인 금관 타악기를 마름모꼴과 원형으로 재해석하여 본래 물체의 모양, 소리, 기능에 대해 환기시켰다. 〈Double Brass Line (Thein No. 183114)〉(2018)은 두께 1cm이자 총 둘레와 길이가 1m인 두 개의 황동 막대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벽에서 중간 높이에 나란히 떠서 배열되도록 설치되어 있다.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이 특수 제작된 황동 막대기는 인접한 벽과의 이격 효과로 인해 아주 강력한 배음(倍音)을 형성한다. 이 독특한 음색은 전시장에 전반적으로 분포하는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작가의 시기별 대표작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유리한 고지를 점유함으로, 크루프가 천착해 온 진위성과 유사성에 관한 개념을 효과적으로 시현하고 있다. 동시에, 작가가 관객과 프로덕션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이해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저메인 크루프는 암스테르담 다스 아츠(DasArts)와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에서 수학하였다. 카셀 프리데리치아눔(Kunsthalle Fridericianum),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Stedelijk Museum Bureau Amsterdam), 미델뷔르흐 박물관(De Vleeshal), 쿤스트할레 뮌스터(Kunsthalle Münster),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 S.M.A.K(Stedelijk Museum voor Actuele Kunst) 등 유수의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크루프는 KW 베를린(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시드니 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 아트 바젤(Art Basel), 프리즈(Frieze) 등 국제 예술행사에서도 조각, 건축,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