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gium Contemporary Now: 쿤 반 덴 브룩, 신디 라이트, 패트릭 반덴 옌데, 기 반 보쉐, 스텝 드리센

18 October - 20 Nov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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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갤러리바톤(서울 서초동)은 미술사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구 미술계를 리드해 온 벨기에 미술의 현재를 조명하고자 《Belgium Contemporary Now》전을 10월 18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지정학적으로 볼때 벨기에는 절묘하게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등 유럽 열강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바다 건너 영국과 인접해 있기에 20세기초 제국주의가 휘몰아칠때 격랑의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은 후에 유럽연합을 포함 다수의 주요 국제 기구의 본부를 유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미술사를 살펴보면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벨기에가 좀더 친숙해짐을 알 수 있다. 현실주의 화풍을 통해 16세기 벨기에의 생활상을 특유의 필치로 기록했던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5-1569), 바로크 미술의 대가이자 종교적,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역작들로 유명한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외 다수의 거장들이 15세기 이후 벨기에 미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근대에 와서는 초현실주의적 화풍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를 배출하는 등 벨기에 미술은 매 시기마다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하고 서구 미술계를 리드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Belgium Contemporary Now》전은 국제적인 인지도와 함께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벨기에 작가인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 b.1973)이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한 점이 이채롭다. 올 3월 아시아 최초 개인전 《From the east to the west and back》을 갤러리바톤에서 열어 미술애호가의 호평을 이끌어낸 Koen은, 예리한 작가적 관점을 바탕으로 전시 기획 단계부터 활발하게 참여하여 현재 벨기에의 회화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 발굴에 힘을 보탰다. 최종적으로 Koen 자신을 포함, 신디 라이트(Cindy Wright, b.1972), 기 반 보쉐(Guy Van Bossche, b.1952), 패트릭 반덴 옌데(Patrick Vanden Eynde, b.1964), 스텝 드리센(Stef Driesen, b. 1966)의 5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이 선보이게 되었다.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은 도로, 도시 변두리, 거대한 인공 구조물 등 인간에 의해 창조된 공간이면서도 왠지 인간이 배제된듯한 공간을 촬영한 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의 해체와 강조의 연속 반응을 야기함과 동시에 추상성을 주입한다. 이로 인해 우리가 무관심했지만 익숙했던 공간들과 사물들이, Koen의 재해석을 통해 사물의 특징을 좌우하는 기초적인 선과 면이 강조되고 공간성과 음영이 부각된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갤러리바톤의 초대로 수차례 방안했을때 촬영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데, 제주도의 Wind Museum을 기초로 한 〈Slat(Interval II)〉(2012)에서는 전체적으로 검게 표현된 공간에 연속적인 흰색 라인을 배치함으로써 원근감과 함께 극적인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채색이 최대한 절제되고 흑백이 강조되는 등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일정한 차별성이 관찰됨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신디 라이트(Cindy Wright)의 작품에서 캔버스에 의도적으로 꽉 차게 묘사된 이미지들은 마치 확대경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사물을 근접하여 바라볼때 느끼는 놀람과 당혹감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녀에 의해 의도적으로 작품 속 거대한 이미지를 대면하게되는 Viewer는 어느덧 이미지 자체가 가진 표피적 특징을 해체하기 시작하고, 이미지의 내면속 실체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전통적인 포토리얼리즘의 범주에 머물기 보다는 정치 사회적인 메세지 또는 여성 작가로써의 이점과 한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하게 됨을 알 수 있다.

 

〈Mickey〉(2008)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작가의 시각적 해석인데, 마구 헤집혀진듯한 동물(미키 마우스)의 뇌가 거대하게 표현된 작품은 은연중에 월가의 붕괴를 암시하고 있다. 기 반 보쉐(Guy Van Bossche)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들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아련한 기억, 순간순간 스쳐가는 일상과 그를 둘러싼 세상에서 매일 반복되는 뉴스와 사건 사고들을 모태로 창조되고 변형되었기에, 구상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채기란 여간 쉽지 않다. 채도가 낮은 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덧입혀진 이미지들은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묘사되어 있고, 원근감과 공간감이 제거된 배경들과 어우러지면서 세잔(Paul Cezanne, 1839-1906)적 화풍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Applause toward applause〉(2012)는 살구색 배경의 큰 캔버스에 배경과 같은색으로 묘사된 벌거 벗은 두 남성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언뜻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는 두 남성은 한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부탁하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고, 또 다른 남자는 짐짓 거만하게 손을 내밀고 있다. 권위와 문명화를 상징하는 의복이 제거된 벌거벗은 남성들이 보여주는 문명적 행동이 아이러니하게 표현되어 있다.

 

패트릭 반덴 옌데(Patrick Vanden Eynde)는 특정한 원칙을 배제하고 그때 그때 떠오르는 심상을 바탕으로 잡지나 사진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배열하며 자신이 원하는 포으로 연결될 때까지 그런 시도를 반복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각각의 작품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게 되며, 각각의 이미지들은 최초 자신이 속했던 매체에서 이질적인 캔버스로 옮겨지는 행위에 종속되게 된다. 작가의 의해 인위적으로 선택되고 배합된 이미지들은 마치 특정한 조건하에 박제된 듯한 형상을 보여주는데, 과장없이 사물을 묘사함으로 인해 마치 실제 있던 사건이나, 또는 영화의 스틸컷 같은 효과를 낳기도 한다.

 

작품의 타이틀과 작품 간의 연상 관계가 뚜렷한 점 또한 특징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총탄이 난무하는 파란 들판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는 여러마리의 오리가 묘사된 작품은 〈Duck Hunt〉(2012)라는 타이틀과 함께 작품의 전반을 부연 설명해 주고 있다. 원색으로 표현된 오리와 총탄의 궤적 등이 다소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으며, 마치 아날로그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스텝 드리센(Stef Driesen)은 이번 그룹전 작가 중에 유일하게 추상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며 하나의 물체라기보다는 덩어리와 같은 이미지들은 무채색으로 빽빽하게 채색된 배경에 서서히 스며들거나, 부유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근래에 들 순수 추상회화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이미지를 외각선과 색깔만을 가진 아주 기초적인 형태로 해체한 후 Viewer로 하여금 각각의 색이 가진 본연의 가치와 캔버스와의 상호 작용에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우리가 회화의 범주와 경계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캔버스에 스며들듯 자리잡고 있는 작품들은 제작 기법 면에서는 언뜻 모리스 루이스(American, 1912-1962)의 워싱턴 컬러 스쿨(Washington Color School)을 떠올리게도 하나, 방향성 없이 캔버스에 자리잡고 있는 덩어리와 선형의 물체들은 그만의 독특한 추상회화의 미래를 가늠하게끔 이끈다.